2022-10-19 09:58:45
MZ세대와 소통할 때는 지시보다는 대화로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MZ세대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M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와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를 통칭하는 신조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하며 유행에 민감한 것이 주된 특징이다.
축구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감독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요즘 축구 선수들이 우리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MZ세대 선수들을 한 팀으로 뭉쳐 원하는 과정과 결과를 내기 위해 감독들은 저마다의 소통법으로 선수들과 유대감을 쌓고 있다. 권위는 내려 놓고 귀를 열어야 한다. 더 이상 ‘라떼는 말이야’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제주국제대 서혁수 감독
호불호 분명한 선수들, 지시 대신 대화를
과거의 축구 선수들은 감독의 말 한 마디가 곧 법이었다. 좋든 싫든 상관없이 감독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체벌과 같은 악습도 있었다. 개인의 정체성은 가려졌고 팀의 목표만이 전면에 등장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팀을 위한 희생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발전도 중요하다. 인생의 전부를 축구에만 ‘올인(All-In)’하는 경우가 드물다. 서혁수 제주국제대 감독은 “옛날과 다르게 요즘 선수들은 개성이 강하다. 과거에는 단체 생활을 통한 규율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선수 개인이 독립적이면서 자기 것, 자기 공간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말했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MZ세대 선수들은 호불호도 분명한 편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선진 축구를 일찌감치 접하면서 어린 선수들도 대부분 눈높이가 높아졌다. 축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비교적 일찍 정립되다 보니 감독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다면 의문을 표하는 것이다.
홍성호 포천시민축구단U18 감독은 “옛날에 주로 하던 주입식 지도는 선수들이 이제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효원 울산대 감독도 “지도자의 이야기를 선수들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안 따라오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다 보니 감독들은 자연스럽게 권위를 내려놓고 소통하게 된다. 선수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팀을 이끄는데도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경기를 앞두고 전술을 준비할 때도 무조건적인 지시보다는 서로 간의 대화로 최적의 합의점을 찾는데 집중한다.
홍성호 감독은 “팀 미팅 때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편이다. 주로 질문형으로 선수들에게 화두를 던진다. 내가 먼저 결론을 내지 않고 선수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선수들이 다들 개성이 강하다 보니 저마다 다른 답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서혁수 감독도 “요즘 선수들은 감독과의 대화에서도 자기 이야기를 다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도 되도록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소통하려고 한다. 지도자가 지적해도 자신들은 잘하고 있다고 믿는 친구들이 많다. 주관이 뚜렷한 친구들이 다수 있다 보니 때로는 지도자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포천시민축구단U18 홍성호 감독
길잡이, 멘토, 친구…’1인 다역’의 감독들
감독들은 MZ세대 선수들이 위기와 불안을 견디는 능력이 선배들보다 비교적 약한 편이라고 진단했다. 모두가 프로 선수로 성공할 수 없는 환경이기에 끝없는 도전보다는 이른 포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한 번 마음이 돌아선다면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다. 감독으로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선수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야 한다.
서효원 감독은 “20대면 성인임에도 아직까지 진로를 부모에게 의존하려는 경우가 있다. 중도에 포기하고 진로를 바꾸려는 선수들과는 부모를 배제하고 직접 대화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선수들이 중도에 포기하려는 이유는 주변에서 다그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다그치지 않고 대화를 하면서 목표를 향해 함께 접근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홍성호 감독은 “때로는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선수들이 힘든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선수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만할래요’, ‘안할래요’라고 말하는 선수들에게 축구는 놀이가 아니라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 세상을 온전히 다 알지 못하는 만큼 슬럼프가 와도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멘토링 교육을 통해 꾸준히 지도한다”고 밝혔다.
훈련도 마찬가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입에 단내가 나도록 훈련을 하는 모습은 최근 들어 잘 찾아보기 힘들다. 선수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MZ세대 선수들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감독들은 이러한 현상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서혁수 감독은 “우리 세대에서는 운동을 되도록 많이 해야 실력이 늘어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요즘 선수들은 운동을 많이, 그리고 힘들게 하는 팀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소보다 운동을 조금 더 많이 하면 힘들어한다. 절실함이 떨어질 경우에는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왜 너는 운동을 많이 안 하냐’며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감독들은 선수의 성장을 위해 인내심을 장착할 필요도 있다. 되도록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를 품고 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울산대 서효원 감독
경기를 앞두고 동기부여를 해야 할 때는 여러가지 수단을 활용한다. 서효원 감독은 “(훈련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가장 좋았을 때의 데이터를 보여주며 대화한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주면서 ‘다음 경기에서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면 선수가 대부분 이해한다. 선수가 데이터를 보고 자신감을 얻는다면 팀도 안정적으로 경기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얘기를 자주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으니 타이밍을 보고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MZ세대 선수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만큼 그라운드 위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이것이 장점으로 발휘되기도 한다. 홍성호 감독은 “고등학생들이지만 스스로 어플을 활용해 물건을 사고 원하는 것을 할 줄 안다. 아이디어가 많고 개성이 강하다 보니 경기장에서 보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이 계속 녹색 그라운드 위에서 무궁한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감독은 길잡이, 멘토, 친구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일방적인 소통보다 선수 스스로가 동기를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혁수 감독은 “메시나 호날두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량을 발전시켜 지금의 자리에 올라오지 않았나? 그래서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부각시키고 칭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100m를 13초에 뛰는 선수에게 12초 안에 들어오라고 강요한다면 그 선수는 결국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면서 “감독은 선수가 발전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목표 설정을 잘해줘야 한다. 그리고 장점을 파악해 그것 위주로 얘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9월호 'LEADERSHIP'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 = 안기희
사진 =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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